내 비만이 아이에게 유전된다? (좀 길어요)
미래의 내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열심히 살을 빼야 하는 이유
(유전자 맞춤 검사 제노플랜에서 퍼온 글입니다)
내가 비만인 것이 다 아빠 때문이라면? 내 자식들이 비만인 것이 다 내 탓이라면?
비만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아이들도 비만의 위험성이 높다는 것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가 밝혀졌는데요, 앞으로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평소에 체중 관리를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살펴볼까요?
<연구자>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의 연구진들과, 당뇨병 관련 약물로 유명한 Novo Nordisk라는 회사가 설립한 연구소에 공동으로 연구하였습니다.
<연구방법>
마른 남자 13명, 비만인 남자 10명으로부터 정자를 채취하여, 그 속의 DNA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아쉽게도 실험 대상자가 너무 적지만, 가장 유명한 과학저널 중 하나인 에 발표된 결과이니 신뢰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연구결과>
마른 남성의 정자 속 DNA에는 “이 사람은 마른 사람이야”라고 쓰여 있었고, 비만 남성의 정자 속 DNA에는 “이 사람은 비만이야”라고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즉, 아빠가 얼마나 비만인지가 자식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부내용>
정자 속 DNA에 그 사람이 말랐는지 뚱뚱한지 쓰여있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요? 그럼 이것이 자식들에게도 전달되는 걸까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배경지식이 좀 필요합니다. 우리는 "유전자가 모든 걸 결정할 수 없다, 유전적 영향보다 환경의 영향이 강하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그럼 도대체 이 “환경의 영향”이 무엇이길래, 내 유전자가 시키는 말도 무시하는 건지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제 친구에게 “키 크는 유전자”가 있다고 해 봅시다. 이 친구처럼 키 크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은 다 키가 클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친구는 자기가 가진 이 유전자만 믿고, 어렸을 때부터 키 크다는 데 좋다는 것들만 골라서 안 하기 시작했습니다. 운동도 안하고, 우유도 안마시고,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렇게나 막 살기 시작했습니다. 바보같이 ‘어차피 나는 키 클 운명이야’ 하면서 말입니다.
그럼 이 친구의 “키 크는 유전자”가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내가 너의 키를 크게 해주겠다는데, 키 크려는 노력이 전혀 보이질 않으니까 이 친구의 키를 크게 해 주고 싶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유전자는, “CLOSED”라는 간판을 내걸어놓고 잠수를 타기 시작합니다. 유전자가 잠수를 타버렸으니… 이 친구는 키 크는 유전자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키가 크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 친구의 사례(물론 이런 사람은 없습니다)처럼, 우리 유전자는 환경의 영향에 따라 “CLOSED”라는 간판을 내걸고 잠수를 타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유전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유전자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제 친구의 “키 크는 유전자”처럼 말이죠.
자 그럼 다시 연구 얘기로 돌아와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른 사람과 비만인 사람의 정자 속 DNA에는 어떤 간판이 걸려 있었을까요? 마른 사람의 DNA에는 “이 사람은 말랐음”이라는 간판이, 비만인 사람의 DNA에는 “이 사람은 비만”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을 것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실제로 이런 내용의 간판이 걸려 있는 것은 아니고, 식욕조절∙대사∙뇌기능 등에 관련된 유전자가 “CLOSED” 간판을 걸어놓고 잠수를 탄 것입니다. 뚱뚱한 사람의 경우 식욕을 멈추게 하는 유전자, 대사를 촉진해서 먹은 걸 소화하는 유전자, 뇌에서 그만 좀 먹으라고 명령하는 유전자들이 단체로 잠수를 탄 것입니다. 당연히 이 사람은 식욕을 멈추지 못하고, 먹었는지도 모르고, 그만 좀 먹으라는 말도 없으니 비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전자들이 (무려 9,000개나 된다고 하네요)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얘는 비만임”이라는 간판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유전자가 “CLOSED”라는 간판을 내걸고 잠수를 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되셨나요?
이처럼 “유전자가 자기 멋대로 잠수를 타서 우리 몸에 변화가 나타나는 현상”을 연구하는 분야를 “후성유전학”이라고 합니다. 즉 내가 어떤 유전자를 가졌는지도 중요하지만, 얘들이 삐져서 잠수타지 않도록 잘 달래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유전자 그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이어트에 좋은 친구인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얘들한테 잘해줘서 잠수를 타지 않도록 해야 하고, 나쁜 친구인 “비만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우울해 할 것이 아니라 얘들을 화나게 해서 잠수를 타버리도록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정자 속 DNA에 이렇게 간판이 걸려있다고 했는데, 그럼 이게 자손한테도 전달될까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 결과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만약 자손에게 전달된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다이어트의 목표에 “내 자식들은 나처럼 되면 안된다!!”라고 써놓아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기사: 비만 아빠에게서 비만유전자 가진 자녀 태어난다 (동아사이언스, 2015.12.)
참고논문: Obesity and Bariatic Surgery Drive Epigenetic Variation of Spermatozoa in Humans (Cell Metabolism, 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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